징기스칸의 대제국 몽골여행 5월-11월도 청주공항 CJB문화탐방 전국예약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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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국가 지상안내
국명 | 몽골(Mongolia) |
위치 |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한 내륙국가 북쪽으로 러시아,남쪽으로 중국과 접경 |
면적 | 156만4,116㎢,한반도의7.4배 |
기후 | 건성냉대기후 |
수도 | 울란바토르(Ulaanbaatar) |
인구 | 320 만명 |
주요 도시 | 다르한(Darhan),에르데넷(Erdenet),초이발산(Choibalsan) |
민족(인종) | 할흐몽골족(90%),카자흐족(5.9%),브리아드계(2%)등 |
언어 | 할흐 몽골어90%,키릴문자,문맹률5%이하 |
종교 | 라마불교(90%),무슬림(5%),무속 및 기독교(5%) |
건국 (독립)일 |
국가독립일: 1911년12월29일(만주국으로부터 독립) 국가독립일: 1921년7월11일(소련 적군과 연합해 중국으로부터 독립) 국가선포일: 1924년11월26일(러시아식 헌법을 채택,몽골인민공화국 선포) |
정부형태 | 민주공화제(1992년1월13일新민주헌법 발효, 2000년12월14일 헌법 개정, (총 의석수76석) |
국가원수 | 대통령: Khaltmaa Battulga (임기4년,연임 가능, 2017년7월9일 결선 당선) |
시차 | 한국보다1시간 늦음 |
몽골은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매우 적습니다. 남부지역은 사막과 황무지이며 서부는 고산지대입니다. 동부지역은 대평원이고 북부지역은 울창한 산림지역입니다.몽골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농작물은 북부지역에서 나옵니다.
몽골의 주요 농작물은 밀,감자,양배추,당근 등이며 과일은 대부분이 수입산입니다.
20년 전이었다면 외국인이 살기에는 많이 불편했다고 했겠지만,지금은 외국인이 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이마트도3호점까지 있으며, CU는100호점 이상의 매장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GS25가1호점을 오픈하여 한국산 편의점이 몽골에서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식당도 60곳 이상 됩니다. 먹는 것으로 고생할 일은 없지요.
인구의55%는 울란바타르에서 거주합니다. 대부분의 인프라가 울란바타르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30층이 넘는 고층 빌딩도 최근에는 많이 지어졌습니다. 외국인이라 해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은 없습니다.외국인 명의로도 아파트나 건물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토지는 내국인만 거래가 가능합니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먹고 사는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 Mongolia ,蒙古]
요약 한반도의7.4배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러시아,남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향하는 시작 지점이라는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13세기 칭기즈칸(Chingiz Khan)에 의해 몽골제국이 성립되어 아시아와 유럽을 포괄하는 세계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1990년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체제변환을 통해 현재 국가의 변혁과 발전을 이어오고 있다.
동북아시아 서북부 내륙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중국과의 사이에 위치한다.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국(Mongol Uls/Mongolia)이다.여기서 몽골(Mongol)은 몽골어로'용감한 또는 다수의 중심'이라는 의미이며,올스(Uls)는'국가'라는 의미다.
몽골지역은 과거 흉노(匈奴),선비(鮮卑),유연(柔然),돌궐(突厥),위구르(回鶻, Uighur),거란(契丹)등 북방유목민족들이 흥망성쇠를 이어갔고, 13세기 들어 칭기즈칸(Chingiz Khan)에 의해 몽골제국이 성립되어 아시아와 유럽을 포괄하는 세계역사에서 가장큰 영토를 점령하여 거대한 국가를 건설하였다.
몽골이 정복전쟁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항복하지 않으면 적의 도시민 모두를 전멸시키는 작전으로 몽골군이 나타났다고 하면 애기 울음도 그쳤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였다, 적토마를 통한 빠른 기동력, 말린 전투식량, 후퇴는 곧 죽음이기에 전진만해야하는 몽골의 강력한 군사력을 싸워서 이길 나라는 당시엔 없었다,그런
몽골제국도 분열과 쇠락을 이어오다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약300년간 만주족이 세운 청(淸)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청나라가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붕괴하자 몽골은 당시 몽골 불교의 수장인 젭준담바 호탁트(Jevzundamba Khutagt)를 왕으로 추대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독립을 하였으나 1919년 중화민국(中華民國)에 의해 독립이 철폐되었다. 이후1921년 러시아 소비에트의 지원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에 성공하고, 1924년 세계 2번째 사회주의 국가인 몽골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그러나 1990년 민주화까지 몽골은 다시 구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고,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한 변혁과 발전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10대 자원 부국이라는 점에서 몽골의 경제적인 잠재력 가치도 높게 평가된다. 몽골은 30개의 몽골계 민족과 2개의 투르크계 민족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지만 할하족이 전체의 약85%를 차지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와 21개 도(道,몽골어로'아이막(Aimag)')로 되어있다.
한국과는1990년 몽골이 민주화된 해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2020년 수교30주년이 되었으며, 2021년 양국은'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외교 관계를 격상하였다.
한국교민 수(주로 여행사, 항공사, 주재원, 금융업,,자원관계산업등에서 진출하여 일하고 있다)현재 약3,000명 정도(자료원:몽골 한인회) 체류하고 있다,.
최근 양국간 현안이슈
정치
ㅇ한국과 몽골은 1990년3월26일 수교하였으며, 2011년 이후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 2011년 양국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를 선린우호 관계에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몽골은 한국을 자국 경제발전의 최적의 모델로 삼고 있으며 한국과의 협력관계 확대를 중요한 외교목표로 설정하는 등 적극적인 한국 접근 친화외교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몽골 대통령들이 모두 한국을 방문했으며, 2016년도에 당시 몽골 대통령 Z. Elbegdorj, 한국 대통령 박근혜가 양국을 방문했다. 2020년은 한-몽 수교 30주년이었기 때문에 양국 간 주요 인사들의 활발한 교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답보상태에 있었으나 다시 활발한 소통을 준비하고 전개를 시작하고 있다.
ㅇ한국은 몽골의 제4위의 수입대상국이며, 2020년10월 기준 총수출의0.3%, 총수입의4.43%를 차지하고 있다.
- 1990년 수교 당시 교역액은 270만 달러에 그쳤으나, 2010년부터 2억 달러를 초과해 2019년에는 3억2367만 달러로 집계되어 양국 상호보완성과 성장잠재력을 감안하면 협력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 2020년2월까지 양국 교역이 증가세를 보였으나 주춤하고있는것은 코로나19여파로 국경봉쇄 및 수요 하락 등에 따른 결과이다. 2020년10월 기준 대 한국 수입액은 1억965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13.3%하락했다.또한 2020년10월 기준 상위10개 수입 품목별로 보면 담배와 화장품,도료, 광산기계부품 수입이 증가세를 보이고있는 추세이다..
ㅇ양국 간 EPA추진 협정 이행을 위한 실무협상 진행 중
- 2016년7월 몽골에서 개최된ASEM회의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몽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EPA(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체결키로 합의했다. 2016년10월1차 공동실무연구단 회의를 울란바토르에서 개최했고, 2017년4월2차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했으며,추후3차 회의를 울란바토르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문화
ㅇ주몽골 한국대사관 및 한인회가 주축이 되어 매년 한국주간행사(Korea week)를 추진하고 있으며,관련 행사에서 한국음식축제, 전통의상 퍼레이드, K-POP경연대회 등 다양한 문화교류행사를 선보이고 있다. 2019년8월에는 울란바토르 시내 국립민족공원(서울숲)에서 개최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ㅇ한-몽 정부는 2년마다 문화 부문에서 교류협상을 추진하고 있으며, 2016~2019년 문화교류 협정을 갱신했다.
한국과 몽골은 역사적으로 1231년 고려고종18년(최우의 무신집권기)에 살리타이가 이끄는 대규모 몽골군대가 침략했으나 30년간 삼별초가 항복하지않고 끝가지 항전하며 고려왕조를 지켜낸 역사가 있습니다.
이때 아기를 나면 아기 방뎅이에 몽고반점이 생겨 현재까지도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국민이 되었고, 제주도에 있는 하루방도 몽골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돌하루방으로서 돌하루방 문화가 이때 전파된 것으로 문화 인류학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국 고유 전통문화인 장승문화에서 나온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한국을 부흥시킨 박정희 지도자가 징기스칸의 후예라고 할말정도이고 한때는 발전된 한국과 몽골을 합병하자는 몽골 지도자가 대두될 정도였고 몽골 젊은이들은 한국언어, 한국문화에 완전 매료되어있으며 한국기업에 취업하는것이 그들의 꿈을 실현할 정도로 한국은 그들에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상적인 꿈의 국가라 할 것이다...중국인들과는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적대적이지만 한국인 이라면 친가족 형제처럼 우호적인 국가이며 한국국민들을 친형제처럼 생각하는 몽골국민들이기에 방문하면 그 따듯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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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1.공항 정보
국제공항인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과 국내선이 오가는 무릉 공항이 있다.
2.관광 정보
1) 여행 최적기
겨울은 영하30℃까지 내려갈 정도로 혹독하다.여름인6~8월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따스하고 건조한 날씨로 여행하기 제격이다.여름이라도 비가 오거나 저녁이 되면 추우니 기능성 겉옷을 챙기는 것이 좋다.
2) 주요 도시
울란바토르,무릉,하트갈 등
3) 주요 관광지
몽골 국립 자연사박물관, 몽골 국립 역사박물관, 수흐바토르 광장, 자이승 승전탑, 초이진 라마 박물관,복드칸 겨울궁전, 테를지 국립공원, 차강노르 ,훕스골 호수, 고비 사막 등.
몽골에서 꼭 체험해야할 대초원에서의 승마체험, 몽골전통공연 관람, 유목민 생활체험, 특급전통마사지가 있고 한국인으로서 몽골의 국왕주치의 이자 애국열사 이테준열사 기념공원에 참배하는 일정이 짜여저있다,
4) 대표 음식
몽골은 넓은 땅을 가지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목초지로 이루어져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쌀이나 채소,과일 등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에 음식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대신 광활한 목초지에서 말과 양,소를 키우는 목축산업이 발달해 양고기 음식등이 발전되어있고 유제품류가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다.
수테차
벽돌처럼 딱딱한 발효차에 소나 양의 우유를 넣고 끓여 먹는 차로 몽골식 밀크티라고 할 수 있다.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하고 몸을 덥혀줘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몽골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음식이다.
양고기
양고기는 몽골 음식의 주요 재료로 몽골을 대표하는 음식이 많다.양고기와 국수를 넣어 볶은 코르나슈, 밀가루에 양고기를 다져 넣어 튀긴 호쇼르,양고기를 넣은 만두인 털망, 양고기 샤부샤부 등이 대표적이다.
3.기타 여행팁
1)환전 정보
울란바토르나 무릉 도심지에 은행이 있어 주요 국가의 통화를 환전할 수 있다. 널리 사용되는 것은$US다. $50 이하는 환전할 때 이율이 다르니 $US로 바꿀 때$ 50이나 $100등 단위가 큰 지폐로 바꿔 가야 한다. (요즘은 국내은행 어디에서나 달러로 환전해 가면 편리하다)
2)사용 전압
전기는 220V, 50Hz(한국은 60Hz임)를 사용하기 때문에 . 전압이 다소 불규칙하고, 전기가 자주 나가니 전압기(AVR)를 가져가는 것도 좋다. 최근에는 전기 사정이 좋아저 한국에서 가져가는 220V면도기, 스마트폰 충전은 무리없이 충전 사용이 가능하다,,
3)전화 사용법
스마트폰에 장착하는 현지SIM카드를 현지에서 구입해 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
로밍 전화는 국제전화요금이 과다 적용됨으로 카톡내 보이스톡등을 이용하여 무료전화를 사용하거나 호텔내 와이파이를 잡아 사용한다,
4)우편 사용법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우편제도가 아직 확립되지 않아 우체국에 자기 이름으로 된 사서함을 만들어야 한다.한국으로 엽서를 보내려면 울란바토르 시내에 위치한 우체국이나 기차역에 위치한 우체국에서 보낼 수 있다.
5)인터넷 사용법
인터넷 속도는 느리지만 보급률은 높다. 도시에 인터넷 카페가 있고,최근 와이파이가 보급되어 외국인들이 많은 카페에서는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도 PC를 구비해놓았고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6)여행 안전수칙
여름에는 강한 햇살에 피부 트러블이 일어날 수 있어 선크림과 선글라스, 팔을 덮는 윗옷이 필수다. 특히 고비 사막에서는 한 시간만 노출해도 살이 심하게 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여름이라 해도 몽골의 밤은 굉장히 춥다. 특히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나 중앙 지역이나 훕스골 호수 쪽으로 이동한다면 침낭과 겨울옷은 필수로 챙겨가야 한다. 양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은 훕스골이나 고비 사막을 여행할 때 햇반이나 라면을 챙겨야 한다. 몽골에 장기간 체류한다면 채소와 과일류가 부족해 걸리는 질병에 특히 유의해야 함으로 비타민제등 책겨가면 좋다.
4.출입국 정보
1)비자 정보
주한몽골 대사관에서 비자를 미리 발급받아야 한다. 일 반 관광비자의 경우, 발급일 로부터3개월 내에 입국해야 하며 최대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인에게 무비자 관광정책을 시행함으로 몽골을 편리하게 방문할수 있습니다)
2)출입국시 주의사항
몽골에 현금을 가지고 왔다가 다시 반출하려면 사업이나 기타 목적으로 외국에서 현금을 몽골로 가지고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관신고 용지를 작성해야 한다. 몽골은 공산품의 해외 반출은 허용하나 옛 골동품에 대한 것은 엄격하게 관리하여 벌금을 물거나 압수당할 수 있으니 골동품을 구입할 때는 몽골 가이드에게 조언을 얻어야 한다. 몽골에서 출국수속을 할 때 두 번의 몸검사를 하기 때문에 녹용,골 동품, 금 등을 소지할 경우 규제하고 있으니 주의토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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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다. 광활한 초원에선 양떼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흰 버섯 모양의 둥근 텐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강줄기는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가르마 같은 길을 따라 낙타를 타고 가는 이들의 행렬도 눈에 들어온다.
입국심사장에서 만난 몽골인들은 얼굴 생김새와 체형이 우리와 비슷한데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은 몽골반점 이야기 때문인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 유목민들은 13세기에 이곳 중앙아시아 대초원에서 시작해 남으로는 남중국해, 서로는 발트해에 이르는 거대제국을 일궜지만 근세에와서 중국에 내몽골을 내주고 국력이 쇄약해저 칭기즈 칸의 후손들에게선 800년 전을 떠올리게 하는 패기와 위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그저 온순하고 친절하기만 하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풍광은 우리나라의 1970년대 도시 풍광과 비슷하다. 최근 높은 빌딩과 아파트촌이있는 신도시가 있는가 하면 외곽에는 한편에 빈민과 유목민의 텐트촌도 널려 있다. 몽골의 면적은 남한의 16배이지만 인구는 300여만명에 불과하다. 이중 1/3인 100만명 가까이 울란바토르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에겐 ‘몽고’라는 국명이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는 반드시 ‘몽골’이라고 말해야 한다. 몽고는 중국인이 주변 민족을 몽매한 야만인이라고 경시해 부르던 데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내몽골의 영토도 중국에 빼앗긴 상태여서인지 중국과는 사실상 관계가 좋지않다,. 1924년 수립된 몽골인민공화국의 약자인 몽골(Mongolia)이 정식 명칭이다. ‘외몽골’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국 자치주인 내몽골과 구분해 부르는 명칭이다. 반드시 몽골로 국가 명칭을 불러줘야하며 내몽골 수복에 대한 몽골국민들의 강렬한 여망이 있음을 알수있다,,,
몽골은 공업주도형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한 국가 이미지 쇄신에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칭기즈 칸의 부활이다. 1921년 사회주의 혁명 후 한동안 그를 봉건압제자로 규정해 이름조차 거명하지 못하게 했지만 지금은 다시 부활되어 공항, 거리, 호텔, 골프장, 보드카에까지 그의 이름을 붙이는 등 몽골의 자부심과 몽골의 상징으로 징기스칸의 존재감을 몽골국민의 정체성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울란바토르 시청 앞에 칭기즈 칸의 대형 동상이 세워저 국민에게 옛 영화와 향수를 자긍심 넘치게 고취시키고 있다.
시내로 들어서니 거리를 질주하는 차량의 절반 이상이 현대자동차이고, 한글 간판도 눈에 많이 띈다. 슈퍼마켓엔 우리나라 화장품, 과자, 식기류, 생필품이 널려 있다. TV에서는 ‘모래시계’ ‘대장금’ ‘겨울연가’를 최고의 인기로 방영되였고 상점이나 극장, 카페엔 으레 한국 연예인 사진이 걸려 있을 정도로 한류 열풍을 실감할 수 있는곳이 몽골이다. 한국식당도 60여곳 이상이 성업 중에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도 가장 많아 17개 대학과 3개 중등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몽골인들은 한국이 학교와 병원을 세워주고, 양국간 청소년 교류도 활발해 한국을 ‘솔롱고스’, 즉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며 한국을 매우 감격적으로 좋아한다. 한국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공부하고있고 한국대학으로 유학을 가고자 노력하는 몽골의 많은 젊은이들의 꿈을 읽을수 있다, 몽골의 비전과 꿈이 한국과 같이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하며 한국을 따라 배우려고 전국민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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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칭기즈 칸(몽골어: ᠴᠢᠩᠭᠢᠰ
ᠬᠠᠭᠠᠨ Činggis Qan, Чингис хаан 한국 한자: 成吉思汗 성길사한, 문화어: 칭기스 한, 영어: Genghis Khan, (1162년 11월 12일 ~ 1227년 8월 25일)은 몽골 제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칸이다. 중국식 별칭은 칭기스 황제,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법천계운성무황제(法天啓運聖武皇帝)이다. 본명은 보르지긴 테무친(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ᠲᠡᠮᠦᠵᠢᠨ, 한자: 孛兒只斤鐵木眞 패아지근철목진)으로,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한 군사·정치 지도자로서 몽골 초원의 부족들을 정복하고 몽골 제국을 성립시켜 몽골과 중국 지역을 비롯해 한반도에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이르는 광대하고 넓은 영토를 정복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청나라 때는 특목진(特穆津)으로 지칭되다가 청나라 멸망 후 테무진으로 복구되었다.
1189년 카마그 몽골의 칸으로 즉위했고, 1206년 전 몽골 제국의 칸으로 즉위했다. 존호인 칭기즈는 1206년 전 몽골의 칸으로 즉위하면서 몽골 제부족장들이 올린 존호이다. 중화민국 건국 이전의 중국에서는 그를 성길사 황제라 칭했다.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능력주의에 기반한 강한 군대를 이끌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이자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 및 인류 최대의 정복군주로 평가되는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인물이다. 반면에 침략당했던 동유럽권과 서아시아에서는 학살자이자 약탈자], 문명의 파괴자라는 상반된 평가도 같이 존재한다. 몽골에서는 신 또는 국가 창건의 영웅으로 칭송된다. 중국사에는 원(元) 태조(太祖)로 기록된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칭기즈 칸 국제공항으로 남아 있다.
징기스칸: 개인의 역사와 대제국 건설
1. 어린 시절과 성장 환경:
1162년 몽골 고원에서 태어남. 본명은 테무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성장.
9살 때 숙적 타타르 부족에게 붙잡혀 노예 생활.
13살 때 탈출하여 몽골 부족을 통합하기 시작.
2. 몽골 통일:
뛰어난 리더십과 전략으로 여러 부족을 하나로 통합.
1206년 몽골 제국을 건국하고 칭기즈칸으로 즉위.
엄격한 군율과 혁신적인 군사 조직으로 강력한 군대를 창설.
3. 대규모 정복 활동:
주변 국가들을 공격하고 광대한 영토를 정복.
중국, 서아시아, 동유럽까지 영토를 확장.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제국을 건설.
. 1)탁월한 전략:
기동성: 몽골 기병은 뛰어난 기동성을 바탕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격과 후퇴 전술을 전개
(하루 천리를 가는 적토마 1인당 2마의 말로 교대로 타고 이동 / 육포와 말젖을 활 용한 전투식량/ 최소한의 갑옷만으로 옷무게 줄임-동유럽등 70KG 철갑옷 기병 대비)
기습: 적을 불의에 공격하여 혼란을 야기하고 전술적 우위를 점했습니다。
포위: 적을 포위하여 항복을 강요하거나 전멸시켰습니다。
정보전: 첩보 활동을 통해 적의 동향을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사신을 파견하여 항복의향을 타진하는등 정보수집을 강화하였습니다..
심리전: 적을 위협하고 공포에 몰아넣어 사기를 저하시켰으며 침공전에 항복을 얻ㄱ어내기도 하였음..
2). 혁신적인 전술:
혼합 병과: 기병, 궁병, 보병을 유기적으로 조합하여 공격했습니다。
십진법 기반 조직: 군대를 10, 100, 1000명 단위로 조직하여 지휘와 통제를 효율적으로 했습니다。
철저한 훈련: 병사들에게 엄격한 훈련을 시켜 전투 능력을 향상시켰습니다。
후퇴는 군법으로 즉각 처형할 정도로 앞으로만 돌격 전진하였습니다..
야간 공격: 주로 야간 공격을 통해 적을 기습하여 사분오열시켜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기술 활용: 공성 무기, 화약 등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3) 성공 요인:
뛰어난 리더십: 징기스칸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로 군대를 통솔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엄격한 군율: 가차없는 징계와 포상을 통해 군율을 유지하고 조직력을 강화했습니다。
강력한 기병: 몽골 기병은 뛰어난 승마 기술과 활쏘기 실력으로 당시 세계 최강의 기병으로 평가받았습니다。(대한민국 올림픽 양궁을 석권하는 DNA 일부도 여기서 나왔다고 주장하시는 분도 계실정도입니다,)
뛰어난 적응력: 다양한 환경과 적에 맞춰 전략과 전술을 유연하게 변화시켰습니다。
강력한 동기 부여: 징기스칸은 병사들에게 정복에 따른 모든 전리품의 공정한 분배와 승진 기회를 제공하여 사기를 크게 드 높였습니다。
4) 징기스칸의 업적:
유라시아대륙을 통합하여 동서양을 아우르는 교역과 문화교류 활성화를 시킨 소통의 창시자...
Pax Mongolica(팍스 몽골리카)라는 몽골의 세계화를 추구한 통합의 시대를 만들어냄.
법률과 행정 역참 시스템을 정비하여 거대제국의 통치시스템을 를 만들고 강화시킨 인물.
5). 징기스칸의 평가:
서양에서는 잔인한 정복자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뛰어나고 탁월한 통찰적 지도자로 인정.
유라시아 및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징기스칸은 잔혹하고 무서운 정복자로 얘기 되기도하지만 아시아출신으로서 셰계를 정복한 거대한제국을 형성한 뛰어난 지도자였으며, 세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지만, 그의 업적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웅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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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기스칸 명언....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칭기즈 칸의 본명은 테무친, 그는 9세에 부족장이었던 아버지가 다른 부족에 의해 독살되자 자신의 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겨우 살아남았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만 났다”.
돌봐 주는 이 없이 남겨진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기 위해 테무친은 손수 풀뿌리를 캐고 물고기를 잡았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마라.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 병사는 적들의 100분의 1, 200분의 1에 불과했다.”
17세에 아버지와 동맹 관계에 있던 다른 지역의 부족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테무친은 아버지의 부하들을 다시 모으는 데 성공한다. 이후 11개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부족장 회의인 쿠릴타이에서 몽골 전체의 우두머리, 칸으로 추대된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칸으로 추대된 그는 군대 및 정치 조직을 제대로 갖추고 법을 만들었다.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부하로 삼았고 문화와 학문, 기술, 정보를 얻어 대제국 통치에 활용했다. 전쟁터에서 그는 병사들이 ‘테무친’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했고 병사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천막에서 잠을 잤다. 이런 노력의 결과 몽골은 불과 70년 만에 중국까지도 지배하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으로 성장했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목에 형틀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칭기즈 칸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그가 이룩한 것은
1204년 몽골 고원 통일
1206년 서하, 금나라 정복
1223년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 건설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의 완성한 입지전적인 영웅적 인물이다....
문명의 우월성을 자랑하고있는 서양인들도 아시아 동양에 이러한 놀라운 영웅적 인물이 존재하였다는것에 놀라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인의 자긍심과 존재감을 극대화하는데 큰 역할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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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겸 월드라이프여행사 대표 김부국